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 (문단 편집) == 상세 ==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은 보조국사 지눌 본인의 소장물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눌이 중국 [[당나라]]에 유학을 간 뒤 고려로 돌아오면서 직접 가져온 것으로 전해지긴 하나, 정확한 제작연도나 제작 국가를 알 수 없다. 사실 지눌의 생몰연대는 1158년~1210년으로 [[고려시대]]이고, 당나라는 618년부터 907년까지 존속하였기 때문에 그 시기가 서로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또한 불감에 아무런 기록도 새겨진 것이 없다. 따라서 작품의 정확한 제작연도와 제작지를 추정할 길이 딱히 없다. 다만 이 작품이 지눌의 소장품이었다고 전해지는 점을 고려하여, 본 불감을 고려시대에 한반도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출처: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46205&cid=46659&categoryId=46659|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의 구조를 살펴보면, 하나의 나무기둥을 세로로 삼등분하여 2/4의 크기를 차지하는 반원형의 중심 방에는 본존불을 모시고, 나머지 각 1/4씩은 양 옆으로 펼쳐 열 수 있게 [[경첩]]을 달아 문처럼 생긴 방을 조성했으며 각 좌우의 방[* 이하에서 말하는 좌우는 본 목조삼존불감을 바라보는 방향을 기준으로 한다.]마다 한 분씩 [[보살]]을 모셔놨다. 각 보살은 왼쪽 방에는 사자가 떠받치고 있는 대좌 위에 올라가 있는 [[문수보살]]과 오른쪽 방에는 코끼리가 받치고 있는 대좌 위에 올라가 있는 보현보살로 확인된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국보42호송광사목조삼존불감날개부분.jpg|width=100%]]}}}|| || 좌측 : 문수보살 / 우측 : 보현보살 || 목조삼존불감의 높이는 13.9cm로 전체적인 크기는 작지만, 새겨져 있는 형상들은 모두가 대단히 섬세하고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또한 장식이나 불상의 형태는 중국이나 인도풍이 강하게 느껴지는 이국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불상의 형태가 처음 전래됐을 시기의 원형(原型)의 모습에 가깝다고 평가된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제작된 유물이 아니라, 전해지는 바대로 당나라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출처: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46205&cid=46659&categoryId=46659|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 목조삼존불감의 보존 상태는 전반적으로 좋은 편이지만 수난을 겪기도 하였는데 1974년에는 도난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도난된지 오래지 않아 무사히 회수되었다.[*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순천_송광사_목조삼존불감|한국어 위키백과 -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46205&cid=46659&categoryId=46659|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 또한 유물의 일부분이 손상되어 있었으나, 2001년에 복원되었다.[* 출처: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94102&cid=40942&categoryId=39201|두산백과 -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 현재 한국에 남아 있는 불감류도 많지는 않은데, 그 중에서도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은 대단히 희귀한 형태의 불교 유물이자 보조국사 지눌 본인의 물품으로 전해지는 유물로서 일찍이 그 가치를 인정 받아 1962년 12월 20일 [[대한민국의 국보|국보]] 제42호로 지정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